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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화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3-22 20:36:15 조회수 3

https://blog.naver.com/twitter99/220322795497

영화 밀양,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영화 / 리뷰   

2015. 4. 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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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을 뒤늦게 보게 되었다. 영화 밀양은 용서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개봉당시에도 그랬고 어쩌면 지금도 기독교에 대한 좋지 못한 그릇된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안그래도 삐닥선을 타고 교회와 기독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역시나 영화 '밀양'을 통해서 재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그게 그럴것이 교회에서 말하는 용서에 대해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기 딱 좋은 케이스로 각색되어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영화 밀양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과 한 인간에 대한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으로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런데 가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 극단적인 행동들이 연출되는데 이 모든 것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특히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오해할 수 있는 행동들이 속속 등장한다. 왜 신은 인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가. 주인공(이신애)도 의문스러운 물음을 던진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왜 우리 준이를 죽도록 내버려 둔것인가?"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위해 세상속으로 나가보면 꼭 저런 질문을 던진다. 전도연이 나약한 인간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속에 살아가며 그런 고통을 잊고자 교회를 찾게 된다. 밀양은 주인공(이신애)가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유괴범에게 아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주인공(이신애)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기지만, 아들을 잃은 아픔과 상처를 종교(기독교)적인 삶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치유하고자 애를 쓰게 된다.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 이신애를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관점으로 해석하게끔 관객들을 이끌어가는데, 현재의 교회모습에 대한 비판과 잘못된 현실상을 낱낱이 꼬집어 내고 적나라하게 비판하며 모순성을 인간에 대한 관점으로 지적한다. 모든 종교에 대한 것들은 어쩌면 모순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내세운 논리대로라면 신과 인간의 단절이 곧 모순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에 대한 말씀과 진리는 변함이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화 밀양에서도 분명히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실랄한 비판과 모순성을 지적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이기에 상처에 치유받지 못한 나약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왜곡되고 잘못 받아들여서 용서가 아닌 저주로 탈바꿈 된다는 사실. 우리는 그것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떤 이는 영화에서 다루는 핵심주제가 '용서의 자격'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수박 겉핥기 식의 이해만 하는 것이다. 용서의 자격이라는 것을 논쟁하기 위해 영화 '밀양' 이창동 감독이 전도연과 송강호에게 영화에서 그런 표출을 주문한 것이 아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영화의 한 장면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의 이야기가 흐르면서 주인공 이신애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들을 죽인 살해범을 성서에 나와 있는 "내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을 고백하면서 용서하고자 굳게 마음 먹는다. 주위에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의구심을 품게 만들며 만류하지만 굳게 마음먹은 것은 곧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시작한다. 그냥 마음속으로 용서하면 되는 것이지, 구지 교도소까지 가서 그 살인범의 면상을 봐야 하냐는 것이다. 결국, 이신애는 감옥에 있던 살인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살인자 역시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죄에 대한 반성은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띄며 '나는 이미 죄사함 받았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주인공 이신애에게 고백한다. 그 고백을 받은 이신애는 마음이 더욱 아프고 상처받은 가슴에 대못질을 할 만큼 미치도록 아프고 더 서글픈 자신을 발견한다. 다시 죽은 아이 준이가 떠오르고 미치도록 아픈 가슴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쩌면 교회를 다니지 않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이 '올커니 저게 무슨 하나님의 논리인가, 역시 말도 안된다'고 강한 비판을 가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과거에 기독교를 비판하며 비웃던 사람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도 이 장면을 통해서 작은 오류를 범하기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아! 하나님이 용서하셨구나. 그 살인자도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주님만 바라보는구나!" 라는 생각.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은 "살인은 했는데, 하나님이 용서해주면 주인공 이신애는 용서할 권리도 자격도 없는 것인가, 뭐가 저러냐, 역시 기독교는 이상한 논리다. 말도 안된다." 등의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영화 감독이 어쩌면 이런 논리를 펼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데 감독은 그런 논리로 영화를 제작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 밀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독선에서 나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그 살인자가 죄를 뉘우치고 죄사함을 빌었을까? 기독교가 가장 비판받는 이유가 이것이다. '무조건 기도해서 용서를 빌면 죄사함되는거 아닌가?!' 죄짓고 기도하고, 죄짓고 기도하면 끝인가? 이런 논리를 펼치며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사람을 많이 봐 왔다. 그 살인자는 진정성을 가지고 죄를 사하고 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죄사함을 받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면 주인공 이신애앞에서 당당하게 웃으면서 떳떳이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 이신애 역시 용서를 한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용서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용서하기전에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살인범을 마주했지만 막상 자신의 얼굴과 대면해서 웃으며, 용서할 자격조차 주지않는 살인범의 모습에 분노와 울분이 터지고 마는 것이다. 주인공 이신애는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를 했다며 주님한테 '누가 용서하는가?', 용서의 권리를 빼앗겼다며 억지성을 주장한다. 교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강하게 표출한다.   

 

 

 

 

 

주인공 이신애(전도연)가 하는 행동들이 반기독교적인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기독교에 대한 안티적인 마음을 가지고 제작한 것은 아니며, 한 인간에 대한 나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신에게 대항해 보지만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극한적인 상황에 도달해 무너지는 끝을 보여 준다.

 

주인공 자신이 손목을 긋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이내 그녀는 밖으로 달려나가 "살려주세요"라는 말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함, 생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신(운명)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이신애의 대사에도 있지만 살다보면 우리는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여기" 등의 말을 내뱉을 때가 종종 있다. 나도 그럴때마다 신의 존재를 지독하게 인식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서 그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마지막에 주인공 이신애가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들러 살인범인 딸이 커트를 하는 장면이 영화속에 한 장면으로 담겼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울컥하며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눈물이 핑돌았다. 지금도 그 알수없는 감정과 벅차오름이 치밀어 내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영화의 감동이 그런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과 영화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도 혹독한 시련에 지쳐 힘든 나날을 보낼 수 있다. 아니 우리도 이미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위로하며 앞으로 전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밀양'이 명작으로써,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것 같다. 이런 명작을 늦게 본 것이 후회스럽지만 지금이라도 본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영화 '밀양'에서 보여준 지독하고 혹독한 현재의 시련앞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주인공 이신애처럼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사는 것이 우리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발버둥치며 살아보고자 노력하지만 그래도 제자리 걸음인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잘못된 선입견과 좁은 식견과 판단으로 감독을 비판해서도 안된다. 또한, 아무도 주인공 이신애를 비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도 한낱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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